Senin, 08 April 2019

평생 바쳐 키웠지만…경영권 잃은 비운의 기업인 - 매일경제

◆ 조양호 회장 별세 ◆
고(故) 조양호 회장은 1970년 8월부터 3년간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사진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제7사단에서 복무할 당시 비무장지대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대한항공]
사진설명고(故) 조양호 회장은 1970년 8월부터 3년간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사진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제7사단에서 복무할 당시 비무장지대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대한항공]
1974년 대한항공에 처음 몸담은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45년간 선대에 이어 `수송보국`을 실천하며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냈다. 이를 통해 한국 항공산업 위상을 높이는 데 부정할 수 없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한진해운 파산과 2014년부터 불거진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 경영권 분쟁에 따른 대한항공 대표이사 불명예 퇴진 등은 어두운 그림자다.

한진그룹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은 인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 귀국해 1970년 8월 군에 자원 입대했다.

당시 강원도 화천에 있는 육군 제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며 철책을 지켰다. 조 회장은 군 복무 중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간 퀴논에서 복무하고 복귀해 남은 기간을 채우고 1973년 7월 병장 만기 전역까지 36개월을 복무했다.
8일 숙환으로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이 지난해 1월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 모습. 조 회장은 비록 정권 압력에 중도 하차했지만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 올림픽 개최에 기여했다. [연합뉴스]
사진설명8일 숙환으로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이 지난해 1월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 모습. 조 회장은 비록 정권 압력에 중도 하차했지만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 올림픽 개최에 기여했다. [연합뉴스]
이후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항공 실무를 두루 거쳤다. 이후 1992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라 그룹 경영을 책임졌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을 맡는 동안 큰 위기가 수차례 찾아왔지만 조 회장은 위기를 기회의 순간으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자체 소유 항공기를 매각한 후 재임차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1998년 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조 회장은 이라크 전쟁, 9·11 테러 등 여파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했던 2003년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구매계약을 맺었다. 이 항공기들은 모두 대한항공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했다. 2000년 세계 항공업계가 무한 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할 때 항공 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해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가 166대로 증가했다. 일본 3개 도시에만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조 회장은 한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 왔다. 조 회장은 `항공업계의 유엔`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 역할을 맡으며 한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 왔다. 올해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성과를 이뤘음에도 이를 보지 못하고 영면에 들게 됐다.

조 회장은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했다. 조 회장은 한불 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관계 증진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2005년에는 몽골로부터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주역도 조 회장이었다.

조 회장은 그러나 한진해운 파산, 가족들의 갑질 논란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고용노동부, 출입국관리소, 교육부, 검찰 등 총 11개 정부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수십 차례 집과 회사에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앞서 조 회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2009년 이후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한 한진해운에 2013년부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하고, 2014년 직접 한진해운 회장직에 올라 사재까지 출연하는 등 회사 살리기에 나섰지만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02년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이후에는 조 회장과 그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과 유산 상속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후 2014년 말 조 회장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일명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적 공분을 산 것으로 시작된 갑질 논란은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과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직원 폭행 등 혐의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이어 배임·횡령 및 탈세 의혹 등으로 조 회장을 비롯해 총수 일가가 수사를 받으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특히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는 나비 효과처럼 번져 조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동시다발적인 사법·사정당국 수사,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반대에 부닥친 조 회장은 결국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한예경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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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08:51:5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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