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언급한 것은 지난 4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 이후 8개월여 만이다. 그동안 소주성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 등으로 박한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도 소주성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집중 타깃이 되는 용어를 쓸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체감 여부와 관계없이 지표가 일부 개선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소주성을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고령화 추세 등 구조적 어려움 속에서도 1분위 소득이 크게 늘어난 것 ▶모든 분위에서 소득이 모두 늘어난 가운데 중간층이 두터워진 것 등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자영업 업황 부진으로 사업소득이 감소한 것과 관련해서는 면밀한 분석과 함께 기존 대책의 효과를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3분기 소득 불평등은 다소 개선됐다. ‘포용 성장’을 앞세운 정부가 가장 주목하는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37만439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늘었다. 소득이 많은 5분위(상위 20%)는 980만240원으로 0.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또 소득 불평등을 가늠하는 지표인 ‘5분위 배율’은 5.37배로 전년 동기(5.52배) 대비 나아졌다. 5분위 배율은 5분위 가구 처분가능소득(세금·이자 등을 제외하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을 1분위 가구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소득격차가 적다는 의미다.
올해도 간신히 최악을 면했을 뿐 ‘차악’(次惡) 수준이란 지적이 나온다. 늘어난 저소득층 소득을 따져보면 정부가 재정을 퍼부은 덕분이다. 전체 가구 일자리 소득(근로 소득)은 4.8% 늘었는데 1분위 가구만 홀로 6.6% 감소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경기 불황 등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거나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여파로 근로 소득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줄어든 저소득층의 근로 소득을 메워준 건 정부였다. 공적연금·기초연금·사회수혜금 같은 ‘이전소득’이 11.4% 늘어 소득 분배율을 벌충했다. 박상영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지난해 4월 기초연금 인상, 9월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확대에 따라 이전소득이 늘어 1분위 소득 증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스스로 잡은 물고기(근로소득)가 아니라 나라에서 잡아준 물고기(이전소득) 덕분에 허기를 면한 셈이다.
최근 들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기획재정부 등은 우리나라 경제와 관련, 유리한 통계만을 인용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일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면서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치솟고, 지방은 급격히 떨어지는 등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문 대통령에게 정책의 ‘그림자’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주성의 부정적 효과를 정부가 재정과 세금을 쏟아부어 상쇄시킨 것이 이번 가계동향조사의 결과”라면서 “소주성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국민의 체감현실과 괴리되는 발언이 계속된다면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가계동향조사에서 근로소득과 함께 소득의 또 다른 축인 ‘사업 소득’은 더 안 좋게 나왔다. 월평균 88만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9% 감소했다. 2003년 이후 역대 최대 폭으로 줄었다. 박상영 과장은 “소비 둔화, 건설 부진의 영향으로 내수가 어렵다 보니 고소득층 자영업자가 아래 분위로 이동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세금·국민연금·건강보험료 같이 국민이 소비 활동과 무관하게 매달 의무적으로 내는 돈(비소비지출)은 113만8000원으로 6.9%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소득의 23.3%로 비중 역시 역대 최대다. 2017년 2분기부터 10분기 연속 증가세다. 줄일 수 없는 지출인 비소비지출이 늘면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세종=손해용·김기환 기자, 위문희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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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08:10:17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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